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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강렬(片康烈) 선생의 호는 애사(愛史)요 본관은 절강인데 누대로 살던 금릉군 어모면 참나무골에서 조부가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로 옮김에 1892년 그곳에서 상훈(相薰)공의 3남으로 태어났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후 항일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나자 선생은 이강년(李康年) 남도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17세로 선봉장이 되어 수도로 진격 중 양주에서 왜적 대군과 접전끝에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크게 부상 했다. 1911년 평양 숭실학교 재학시에는 사내(寺內)총독 모살사건 연루로 서대문에서 2년 옥고를 치뤘고 방면 후 부친이 경영하던 양진의숙(養眞義塾)에서 항일지사를 양성하다가 왜경 감시를 피해 1914년 이 고장에 내려와 개령면 덕촌동에서 서당을 열고 항일지사를 양육하는 한편 황악산 삼성암에서는 무술을 가르쳤다. 3.1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