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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수행이 있고나서 도장이 마련되었다. 인도 마갈타국의 왕사성밖에 죽림정사가 세워진것이 불교교단 최초의 절이다. 조계산 송광사는 신라 혜린대사에 의해 창건된 작은 절이었는데 그떄 이름은 길상사이고 산 이름은 송광산이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이울어가던 고려불교를 다시 일으키기위해 정혜결사의 도장으로 이곳을 선택 전후 9년에 걸쳐 사옥 80여간과 불전 법당 승료등을 차례로 세워 결사도장의 면목을 새롭게 했다. 1200년 신종3년 국사께서 공산 居祖寺(거조사)에서 이곳으로 옮기신후 11년동안 청중을 거느리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일꺠우는 정진을 함께하니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헤아릴수가 없었다. 그 중에는 세속의 명예와 지위 처자권속을 버리고 결사에 동참한 식자층과 왕족 권문세가인사들도 수백명에 이르렀다. 그 시절의 송광사는 명실공히 동방제1도장으로서 찬란한 빛을 발했었다. 국사께서는 사람들에게 금강경을 독송토록 권했고 법을 세우고 뜻을 풀이할때는 6조단경을 교재로 삼았으며 좀더 깊이 이치를 밝힐때에는 이통현의 화엄론과 대혜어록을 새의 두 날개처럼 여기었다. 그리고 성종○○원송신해경재의 3문을 열어 교화하니 여기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오입하는 이가 많아 일찌기 볼수 없었던 선학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희종은 태지서절부터 국사를 흠모해 왔었는데 즉위하자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로 고치도록 손수 글씨를 써서 제방을 내렸다. 그후 본산의 옛이름을 따라 송광사로 고쳐부르면서 목우가풍을 크게 선양하였다. 이 결사로 인해 15국사를 비롯 수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어 증보의 빛나는 가람을 이루었으며 또 한국불교의 근본도장으로서 독자적인 전통이 마련되고 선불교의 조계종풍이 면면이 계승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