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page


458page

유흥주(劉興柱) 1871년(철종 8)∼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미원(未元)이고, 호는 송암(松菴)이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전라남도 승주군(昇州郡) 낙안면(樂安面) 하송리(下松里) 출신이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무장현감(茂長縣監) 은재공(隱齋公) 유한량(劉漢良)의 후손이다. 타고난 성품이 강개하였다. 1910년(융희 4) 한일병합이 되자 울분을 품어오다가, 1919년 2월 3‧1운동 계획을 갖고 잠입한 안호영(安鎬榮)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여 이팔사(二八社)와 도란사(挑蘭社) 등 항일투쟁 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는 이 조직들을 바탕으로 하여 3월 17일 하송(下松) 마을 앞에서부터 낙안 장터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그러나 시위 중 일본군의 칼에 맞아 크게 부상을 당한 채 체포되었으며 1년 6개월 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82년 8월 15일 정부는 유흥주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하여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그의 묘소 옆에 기적비(紀績碑)를 세워 주었다. 낙안초등학교 교정에 건립된 기미독립기념탑에 그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