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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柳興柱, 호 松庵)는 전라남도 순천(順天) 사람이며, 이곳의 유림지사(儒林志士)이다. 1919년 4월 13일의 낙안읍(樂安邑) 장날을 이용하여 김종주(金鍾胄)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정오경 호남유사(湖南有司)를 지낸 애국 유림지사 김종주와 함께, 자신이 직접 「조선독립기」·「대한독립기」라고 쓴 2개의 대형 깃발을 만들어 읍내 서문 밖으로 나갔다. 이날은 마침 장날이어서 박태문(朴太文)·배윤주(裵潤柱)·배형주(裵炯柱)·김선제(金善濟) 등 1백 50여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그는 김종주와 함께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독립 제의가 있었으며 서울을 비롯하여 국내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리고 이곳에서도 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였다. 이에 군중이 적극 찬성하자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서문안으로 시위행진하였다. 당시 서문안에서 수비하고 있던 일본군 2명의 보초를 밀어내고 시위군중은 서문으로 들어갔다. 일본 헌병과 보병 6명이 총검을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무력을 행사하니, 그는 이때 일본 헌병과 보병에게 달려들어 총검을 빼앗으며 시위하다가 일본 군경이 휘두른 총검에 부상당한 몸으로 체포되었다. 결국 이해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