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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백강 조경한선생 추모비 삼천리 금수강산이 일제의 총칼아래 유린되고 신음할 때 나라를 되찾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니 아! 그 이름 청사에 찬란한 백강 조경한 선생(1900 - 1993)이어라. 선생은 구한말 순천에서 태어나 송병선의 학통을 이은 조부로부터 한학을 수학 애국충절의 정신을 체득하였다. 청년기에 3.1운동을 목도한 선생은 1927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홍진 이청천등과 3본주의(민본, 방본, 인본)을 포방한 힌국독립당을 조직해 활약하였다. 독립군을 결성한 이들은 길림자위군과 연합하여 만주벌판의 쌍성보 사도하자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특히 대전자대첩은 청산리대첩 못지않은 쾌승이었다. 허나 만주괴뢰국과 일본군의 강압으로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 낙양으로 옮겨가 독립군양성에 힘썼다. 광복의 노듯돌을 놓은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서 도왜작전을 펼치니 민족의 섬광이었다. 1945년 8월 광복이 되자 환국하여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10만 선량이 되어 민의를 대변하였다. 만년에는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필명을 다하니 초지일관 독립운동의 공훈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사" 와 "백강회고록"등을 남기고 1993년에 별세하니 사회장으로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안장되었다. 90평생을 나라사랑 겨레사랑에 바치니 아! 선생의 거룩한 일생은 민족과 더불어 일월처럼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