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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150여명이 합세하였다. 이때 성문 보초병이 그들을 제지하였으나 유흥주가 보초병을 밀어제치는 순간 시위대가 성내로 쇄도하여 수많은 장꾼들과 합세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순찰 중이던 일본 헌병이 총검으로 제지하자 앞에 있던 김종주가(찌를테면 찔러보라)고 가슴을 내밀며 대들었다. 다급해진 왜경이 칼을 뽑아들자 김종주는 왜병의 칼을 빼앗으려다 그 칼에 부상을 당하여 선혈이 낭자하였다. 그것을 본 아들 김선제와 대원들이 왜병의 총검을 빼앗고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던 중 김선제는 그들의 칼에 배가 터지고 유흥주는 오른팔을 배형주 박태문 배윤주는 팔과 머리 등에 심한 부상을 당한 채 체포되었다. 1차 시위에서 검거를 모면한 안응섭 안용갑은 4월 14일 오전 안규삼 안규진 안은수 안상규 등과 함게 다시 김천 근방에 모여 3차 운동을 모의하고 안규삼은 벌교장에서 포목 1자를 구입하여 대원들과 장꾼들이 보는 앞에서 무명지를 깨물어 혈서로 태극기를 그려 장대 끝에다 높이 달고 시장으로 들어가 장군들과 함께 만세를 고창하니 시장 안은 만세소리로 물결쳤다. 그때 왜병들이 몰려와 대원들을 포박하려고 하던 순간 육박전이 벌어졌으나 결국 총검으로 무장한 왜병들에게 많은 부상을 입고 포박된 채 끌려가 시장 바닥은 선혈로 얼룩졌었다. 이렇게 3회에 걸친 만세운동으로 대원 25인이 체포되어 6월에서 1년 6월의 형을 받고 투옥되자 안규인 등 26인의 유림들이 다시 혜지사를 조직하여 투옥된 동지들의 뒷바라지와 빈곤한 유가족의 생계를 도왔었다. 이와 같이 우리 고장의 애국지사들은 일제의 감시와 탕압에도 굴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 아래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니 이 장열한 항쟁의 유훈과 숭고한 얼은 민족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