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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황현(梅泉黃玹) 조선말기 대학자요 시인이자 우국지사였던 매천 황현선생(1855~1910)께서 태어나 성장한 생가로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광양시에서 건립한 것이며, 황현선생(855~1910)의 본관은 長水(장수)이며 호는 梅泉(매천)으로 黄喜政丞(황희정승)의 15대 손이며, 시골 선비였던 아버지 時黙(시묵)과 豐川盧氏(풍천노씨) 사이에서 2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시문에 능하여 29세(고종25년 1883년)에 特設保擧科(특설보거과)에 급제하였고 34세(1888년)에는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과 조정의 부패를 안타깝게 여기고 급제와 동시에 낙향하여 구례에 살면서 호양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양성과 학문에 몰두하였다. 선생이 51세가 되던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 체제에 들게 되자 이에 비분강개하여 여러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聞變三首(문변삼수)란 시를 지어 賣國(매국)행위를 통탄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일제에 항거하는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니 때는 1910년 음력 8월 7일 그의 나이 56세였다. 황현의 저서로는 고종 1년(1864년)부터 한일합방(191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제로 서술한 매천야록, 매천집, 매천시, 동비기략 등이 있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單章(단장)이 추서) 되었고, 1998년에는 당해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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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황현(梅泉黃玹) 매천황현 (1855년 12월 11일 ~ 1910년 9월 10일) 약력 1899 언사소를 올려 국정개혁을 주장 1905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애국시 발표 1910 한일합방조약에 반대하여 자결 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