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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본제국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국은 백척간두의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분개한 황병학(자 영문 1876.1.11.~1931.4.23.)은 뜻을 같이 하는 종숙 황순모와 함께 나라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이르렀으니 이처럼 얼굴에 상처를 입고 살 바에야 차라리 원수를 갚고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는 격문을 사방에 붙이자 산포수 등 200명의 장정들이 호응하여 의병을 규합하였다. 그리하여 1908년 7월 26일 광양의 영봉 백운산에 호남 창의대장기를 꽂고 일본제국에 맞서 투쟁을 선포했다. 1908년 8월 5일 의병 150명은 광양 망덕포로 이주해 근대적인 어선으로 어장을 싹쓸이해서 광양어민을 괴롭히는 일본인을 기습 공격하여 선박을 침몰 시키고 주택을 불태우고 일본인을 사살하고 무기를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다. 1908년 9월 5일 망덕포전투로 일본인이 입은 피해를 보복할 목적으로 일본헌병경찰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