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page


145page

독립지사 진주정공 휘 길화(귀인)요 자는 순여로 시조 휘 장의 22세손이다. 진주정문의 연원은 신라 육촌 중 자산진지촌(본피부) 장지백호 이후지어 분관예의 후예로 중추원사 휘 장을 시조로 세계한다. 공은 1885년 고 휘 운중과 비 창원황씨의 생 1남 3녀 장방으로 자유총명하고 조숙유학하며 성숙하던 중 국가세태가 혼란과 외세침탈로 끝내 왜국의 식민지화되므로 민생은 험난해지고 민권은 말살되니 1919년 기미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이름으로 자주독립선언을 공포하고 방방곡곡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니 광양에서도 공과 더불어 동지 서경식 박용래 정성련 김상후 공 등 5의사는 4월 1일 인동리 김만두의 집에서 밀회하고 태극기와 독립운동 격문을 작성 오후 4시경 옛 금융조합앞에서 출발 구 경찰서쪽 큰길로 전진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운동격문을 산포하며 함성을 울리니 장터에 모인 군중은 천여명에 달하였다. 연이나 왜경과 헌병기마대는 강제로 군중을 새산시키고 앞장섰던 공을 체포 구속한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1919년 기미 4월26일 형 제434호 선고로 징역 8월을 복역하였다. 장재 아 독립지사 길화공은 애국애족정신을 후세에 남기셨다 조국광복과 더불어 공의 지유평등정신은 국민의 귀감이되어 대통령표창 제83861호가 수여되고 문화재관리비 번호 제0809027호를 받았다. 희라 공은 배 김해김씨와 3남 3녀를 두고 가셨다. 묘는 광양 옥룡 죽천리 전 255번지 세장 묘원 축간좌로 쌍조하고 합장배례하오니 공이시여 영세안식하옵소서 서기 2011년 신묘 9월 25일 진주정씨 공대공파 시익종회 일동 근수 17대 18대 19대 국회의원 우윤근 찬 병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