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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 북간도 명동촌은 1899년 함경남도 종성 출신과 회령 출신 네 가문이 이주하여 세운 마을이다. 명동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그들은 아무도 살지 않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 6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많이 잊혀진 상태이다. 시인 윤동주이 '동(東)'자는 「명동」에서 따온 것으로 그만큼 이 고장 명동에 대한 애착은 각별하고도 큰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인 1866년 그의 증조부 윤재옥이 43세 때 4남 1녀의 어린 자녀들 이끌고 북간도 자동(紫洞)으로 옮겨 온 후, 1900년 조부인 윤하현(尹夏鉉) 때에는 다시 명동촌으로 이사, 자수성가하여 가세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후일의 윤동주의 저항시인적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이 고장 명동촌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도 결코 군더기는 아닐 것이다. 그가 자란 명동촌의 아름다운 자연은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배경이 되어주었다. 당시에 명동출신이라 하면 으레 배일(排日) 운동가의 낙인이 찍힐 만큼 삼엄한 대외적 인식을 갖게 된것이 사실이다. 평생 일본(日本)이라고 부르기가 싫어서 왈본(曰本)이라고 불렀던 지사(志士)들이 많았던 것도 그 고장의 개성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