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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일제는 조선인 청년 학도들까지 전쟁터로 내몰았다.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채 정병욱은 1944년 1월 일본군에 끌려가게 되자 광양의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유고 보존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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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 달라고 유언처럼 남겨 놓고 떠났었다. 다행히 묵숨을 보존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님은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던 동주의 시고를 자랑스럽게 내주시면서 기뻐하셨다.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것이다' -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