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page


516page

매이지 않았다. 항상 명예와 절조을 마음에 간직하고 집안 살림에는 힘쓰지 않았다. 그 재능은 군사에 관한 일에도 능숙했다. 그는 한말 항일 전후 기 옛날 이름난 장군들이 위급한 전투에 기묘한 방책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일들을 예기했다. 또한 오늘에 와서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는 가산이나 국가가 망하게 될 징조라고 한탄하며 울분을 토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1900년 전후 의사 안규홍이 의병을 일으킬 때 병국이 모집에 응하여 나가니 담산은 기뻐하여 그를 좌우익 부장으로 삼았다. 병국은 방략을 세우고 위험한 국면을 안전하게 이끌었다. 또한 좋은 결단이 되도록 도모하고 자문하여 충고하니 담산은 그의 智謨(지모)를 인정하고 항상 받아들였다. 파청진산의 대첩 송곡과 葛峙(갈치)의 노획 복내시장의 전투는 모두 병국의 공로가 지대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시천서 헌병대에 중과부족으로 체포되어 광주재판소로 이송되어 구금되었다. 왜적과 괴수는 갖은 방법으로 그를 유혹하고 협박했었다. 병국은 죽음을 맹세하고 항거하면서 굽히지 않고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병국은 종손이란 이유로 사방에서 지인과 백성들의 호소가 끊임없이 이어지니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석방해 주었다. 병국은 자기의 삶을 죽음보다 못하게 생각하여 항상 치욕스럽게 여기고 단산과 죽음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병국은 국위를 선양치 못함을 계탄스럽게 여기며 초야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무꾼 행세를 하며 끝내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