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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봉강은 보성의 자생적 자치기구였던 보성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몽양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미군정이 인민위원회와 건국준비위원회를 해체하고 몽양마저 암살당하자 당시 몽양의 근로인민당에서 재정부장을 맡았던 봉강을 비롯한 영광 정씨 가문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일가친척들은 각자의 뜻에 따라 거취를 정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봉강은 '거북정'이라 불리던 정씨 고택에 칩거했다. 모든 재산과 청춘을 바쳐 새로운 세상을 꿈꿔왔지만, 그 꿈은 가족과 친지들의 죽음과 비극으로 돌아왔다. 그 비극의 마지막이 바로 1980년에 있었던 보성가족간첩단 사건이었다. 봉강이 죽은 후 전두환 정권 하에서 이들 가족은 간첩단으로 엮여 사실상 멸문의 위기에 처한다. 정길상의 형은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고, 정길상과 봉강의 삼촌이었던 정종희 등 수많은 정씨 일가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겪고 10여 년의 옥중생활을 했다. 심지어 과거 총탄에 실명을 한 정종희는 북과 연락하며 암호를 풀었다는 혐의로 무전 간첩이라 하여 체포되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어떻게 난수표를 보고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런 합리적이고도 당연한 질문은 당시 재판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출처 : OhmyNews 19.04.26 이순신이 아낀 정씨 가문은 어떻게 간첩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