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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도왔으나 일제는 더욱 가혹한 식민통치를 감행아여 한민족의 말살정택에 광분 우리의 고유문화와 미풍양속을 없이 하여 일제에게 노속화하려하여하였다. 3.1운동 이태뒤인 신유년 8월에 일제는 보성향교의 문묘대제에 헌작할 신성한 제주에 까지 저들의 주세령 위반이라하여 봉인하는등의 무례함을 범하자 이에 격분한 유림은 일제세무리를 묽고 고변하여 화형에 처하려하자 대경한 왜경은 참판 박남현을 비롯하여 박태익 박기용 송광면 손용석 문창의 최락구 정덕여 이병문 이병락을 주모자로하여 70여명의 유사를 검거 장흥검찰국에 인금하였도다. 누설의 곤욕중에 처하였음에도 유사들은 늠연히 왜경의 불법 불의함을 꾸짖고 굽힘이 없었도다. 사세가 이에 이르자 박태규 최창순은 보성향교에서 전국 유림 궐기대회를 열어 주세령반대 일본인관리 규탄성토 유림총궐기를 촉구하는 경고 팔도향교문을 전국 향교에 포고하여 동지상합 동성상읃 동의관철의 3동 대의를 천명하고 전국유림의 총궐기를 부르짖어 카다란 호응을 받게되어 이 운동이 전국에 파급되려하자 당혹한 일본제국주의 당국은 긴급히 회의를 열어 1. 구속된 유사의 전원 즉시석방, 2. 각 향교제주는 임의로 양조하여 쓰도록 제세령의 즉시개정 공포 3. 유림이 궐기않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워게 되자 구금되었던 유사들이 해빛을 보게되고 전국향교에서는 마음놓고 제주를 빚게되는 개가를 올리게되었도다. 장재하! 보성향교 유림들의 창의항쟁이여 학에 뿌리하고 행에 의로왔으니 유교의 실천철학의 발로요 민족의 주권사상의 응결이었도다 이에 대성지성문선왕의 영이 왕양하게 섭강하시게되니 원향이절의 천도가 밝아지고 인의예지의 인성이 자리잡게되었도다. 조국이 광복된지 마흔세돐을 맞는 이 해에 보성향교에서 항일사적비를 세움에 즈음하여 사관은 삼가 그 대강을 적어 임진의병의 춘추대의적 정적을 이어 항쟁한 보성유림의 푸른 절의와 맑은 지조를 경앙하옵고 민족적 유림항일운동사적의 장절을 국명하여 후세의 뜻깊은 이의 호국적 가감의 사간에 자하고자하는 바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