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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충의의 상징이요 산양은 절의의 의표라 할지니 보성은 본시 마한의 옛땅으로 백제때는 복홀(伏忽)이라 이름하였고 신라에 에르러 보성이라 명명되었으나 고려에서는 산양이라 했으며 한떄 구주라 하다가 보성으로 복원되어 조선조를 거치어 현금에 이르렀으니 밝다의 뜻을 가진 유서깊은 역사의 고장이로다. 노령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형성된 제암산을 주봉으로 하고 덕산을 진산으로 하여 죽천을 띠로 하였으니 인산지수의 결국으로 지령한 위에 일찍이 교궁이 마련되어 읍양과 진퇴의 예절을 몸에 익히고 효제와 충신의 덕목을 마음에 배게 훈도하였으니 인걸이 어찌 나리오. 열선루에 음영하고 향촌대에 주사하니 경사를 상거함이 팔백리이나 문물의 빈빈함이 군현에 으뜸이었도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보성의 유림의병이 앞뒤하여 봉기 국난에 당하였고 조선조 말기에 일제가 우리강토에 침략하자 임진의병의 전통을 이은 항일의병이 궐기하여 국권회복전에 몸을 바쳐 싸웠으니 보성은 실로 나라의 병번이요 겨레의 구심으로 유학에 바탕한 호국구민의 본이라 기리는도다. 오라 존○토복의 기치아래 혈전한 보람도 없이 마침내 옥사로 국치민욕을 당하였도다 와신상담하던끝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보성의 만세함성은 산천을 흔들어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