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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성암 박창규 장로 추모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침략하고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도발하면서 한국을 전쟁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고 인적, 물적 자원을 강제로 수탈하는 한편 소위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등 민족정신 말살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박창규 장로님(1880~1973)은 고향인 전남 보성군에서 기독교 교회 전도사로 7개 교회를 시무하면서 1940년 4월 신도들에게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는 우상을 숭배하도록 하여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강력히 거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장로님은 이일로 인하여 소위 일황불경죄 및 일본국체변혁 선동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4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셨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독립유공으로 건국포상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운동에 앞장 서 오신 장로님을 추모하며 당시 시무하시던 7개 교회(조성, 덕산, 예동, 회천, 득량, 천치, 유둔교회) 성도들이 힘을 모아 추모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