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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사 바로 옆에는 호남의병 격고지를 기념하는 비와 세심당 백홍인 선생 강학유지비가 서 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운을 걱정하여 의병운동에 동조하고 있었다. 당대의 거유 면암 최익현이 창의포고문(倡義布告文)을 지어 각 고을로 통문을 돌렸다. 이에 백홍인은 송연제, 송심석과 더불어 거병할 것을 결심하고 남방의 여러 고을을 다니면서 의병활동을 전개할 것을 권면하였다. 1906년 호남 각지에 팔도사민서포고문(八道士民書布告文)을 배포하다가 장흥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5개월간 구금된 후 석방되었다. 은밀하게 동지를 규합해오던 면암이 안병찬과 손을 잡고 태인, 순창을 거점으로 유림 인사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의병운동을 전개할 때 여기에 참여하였다. 면암 의진에 입진하여 적군과 약간의 교전을 하였다. 1910년 이른바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이에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고, "2천만 동포가 왜놈들의 밥이 되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겠느냐" 고 하며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