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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도다 이 붓을 듦이여! 민족독립운동의 최고지도자이시며 겨레의 큰 스승이신 선생께서 이곳에 은거하신지 어언 108년이 되는 오늘 그분 행적의 일단을 새기게 됨에 어찌 기쁘지않으리오. 명성황후 살해만행의 원수를 갚기위해 기회를 엿보던 선생께서는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군 첩보장교 중이 스치다(土田)를 맨손으로 처단하시고 사형을 언도받아 집행되기직전 고종황제의 사전으로 사형집행정지의 상태로 인천감옥에서 복역중 나를 죽이려는 놈은 왜놈뿐인데 내가 그들을 위해 죽어야하나 생각되어서 탈옥을 감행하셨다. 탈옥후 피신길을 택한 선생께서 목포, 완도, 장흥등을 거쳐 이곳에 일가들이 집성촌 한마을이 있음을 알고 찾아오시니 1898년 음력 5월 무더운 어느날이었다. 당시 문사일을 보던 김승묵(자 광언)은 김두호라고 칭한 젊은과객을 반갑게 맞아 들였다. 33세의 젊은 선생은 10여살 위인 윗행렬들과 동유하며 학문과 세태등을 논하였으니 주로 광언, 덕은, 사중및 선씨등이었다. 선생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