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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송선생을 배알하였고 신축년에 주사에 임명되고 임인년에 본읍의 향약장이 되었는데 이때 웬만한 경비는 자담하였으므로 군수 이사필과 순찰사 신응수가 그 창박을 보고 공의 청렴함에 크게 감복하여 부끄럽게 여겼다. 기묘년에 중추원의관이 되었고 그 이듬해에 통정대부에 올랐다. 공이 관직에 나간것은 한번 큰일을 해보려고 하였지만 당시 조정이 부패하여 여의치 못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왔는데 간혹 규당 정범조, 영재 이건창, 난사 강우성, 무정 정만조, 매천 황현, 일신 정의림등 제공과 더불어 시를 짓기도 하고 담론하면서 강개하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5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표학 경술년 8월에는 종사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절했다 깨어나 이곳에 서산이 없으니 어느곳이 동해인가 구차하게 하루를 살면 하루가 더 욕된일이라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곤욕을 당하고 있어도 이제 회복할 대책도 없고 내 몸둘곳도 없으니 나는 지금죽음으로써 국은에 보답하겠다하고 손가락을 깨어 총독부에 보낼 혈서를 써서 도이들의 배의무신함을 질책하고 또 절명시와 계자유사를 지어 자신은 이미 나라에 메인몸이지만 천하에 불효자라 하면서 계자 익회에게 조부님을 잘 봉양하라 부탁하고 리사에 나아가서 북녘 대궐을 향하여 네번 절하고 비상 다섯알을 먹었는데 옆에 있던 가족에게 발견되어 구제되었다. 그러나 그날밤 가족들이 모두 잠든틈에 즉시 마을앞 냇불에 가서 몸을 묶은후 투신하여 목숨을 스스로 끊으니 8월 15일이었다. 아! 슬프다 천하에 죽지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만 선비는 때를 만나 죽는것이 소중한것이다. 공이 이처럼 왜놈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분통하게 절명하였으니 그 애군우국하는 정성이 천재토록 빛나리라. 하루는 공의 손자인 주석보가 내게 비명지어주기를 요청하는데 나는 불문으로 기인이 아닌데도 가까운 일가로 사양할수 없어 다음과 같이 명하나니 왈 저 소평천을 바라노니 격렬한 물결소리 원통함을 호소하는듯하고, 꾸짖는것 같기도 하다. 지난 경술년의 국치를 뉘라서 한을 품고 원통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오만은 오직 공만은 일찍부터 의와 생명의 중함을 판단하여 충성하는 길을 택하였으니 동해에 빠져죽겠다고 말한 제나라 의사 노중연과 멱나수에 빠져죽은 충신 굴원으로 더불어 의가 서로 맞고 도도 또한 같가도 할것이다. 비록 총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