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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화은 양공 재해 유적비문 설명 공의 본관은 제주양씨 호는 화은 자는 순집 휘는 재해이시며 청풍면 백운리에서 1855.4.1에 출생하셨다. 시조의 휘는 양을나이시며 중세조는 정능 예강공 학포 휘는 행손선생의 13세조라 공은 성품이 청렴강직하고 불의와 타협을 안 하시고 의분심이 강한 재덕과인한 한학자라. 면암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문하생으로 충효 정의 정신과 공맹지도를 수학하여 무예가 뛰어난 선비라 때는 조선말기 시대로 1895년 일제가 국모인 명성황후를 자객을 시켜 시혜하고 고종황제의 아관파천이 있었으며 1908년 일제가 강압으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함에 국운이 쇠약한때라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로다. 이에 분노한 대한제국 군민들은 비분강개하고 살신성인하며 숭고한 애국정신으로 조국수호에 몸바치셨다. 이때 공은 동학난을 당하여 능주고을 목사에게 제세안민정책을 제안하였고 단발령이 내려짐에 화망건의를 자책하고 화학산중에 은거행의 하시니 화은처라사라. 을사조약의 소식을 듣고 통탄하며 면암선생과 창의거사를 모의하고 호남의병을 모집 순창으로 행군할세 일본헌병과 대치벌이니 일 헌병대의 총탄에 정시해의병이 맞아 순직하고 의병단 수백여명이 모두 흩어지느니라. 끝까지 항거한 화은선생을 비롯한 12명(최익현,임병찬, 고석진, 김기술, 물달환, 임훈주, 조우식, 조영선, 최제학, 나기덕, 이용길, 유해용)의병은 죽기를 각오하고 물러서지 않다. 공이 경성감옥에 갇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