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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선생)의 諱(휘)는 俊奇(준기) 號(호)는 仁峯(인봉) 本貫(본관)은 昌寧(창녕)으로 庚寅西紀一八九○年閏二月一日 全南和順郡綾州(전남화순군능주)에서 考諱秉南公(고휘병남공)과 ○全州崔氏(비전주최씨)의 三男(삼남)으로 出生(출생)하였다. 先生(선생)은 天性(천성)이 慧悟(혜오)하고 好學多才(호학다재)하여 일찍부터 鄕黨(향당)의 與望(여망)을 걸머지고 있었다. 私塾(사숙)에서 修學(수학)하여 學問(학문)이 大進(대진)하였는데 十六歲(십육세) 때에 乙巳保護條約(을사보호조약) 二十歲(이십세)때에 朝日合邦(조일합방)으로 祖國(조국)의 覆滅(복멸)을 目睹(목도)하고 悲痛(비통)한 나머지 三日(삼일)을 號泣絶食(호읍절식)하였다. 그러나 悲憤(비분)만이 能事(능사)가 아님을 깨닫고 奮然(분연)히 일어나 祖國(조국)의 主權回復(주권회복) 自主獨立(자주독립)을 爲(위)한 抗日鬪爭(항일투쟁)에 生命(생명)을 바칠것을 決意(결의)하고 이 鬪爭(투쟁)의 첫 出發(출발)로 生死(생사)를 같이 할 同志(동지)를 糾合(규합)하여 綾州靑年會(능주청년회)를 組織(조직)하고 衆意(중의)에 따라 會長(회장)이 되어 熱血(열혈)의 靑年鬪士(청년투사)를 많이 包攝(포섭)하였다. 同時(동시)에 州民(주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