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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하여 서로 결탁하고 드디어 기병을 했으니 때는 기유년이었다. 공은 양창의장의 참모가 되어 의사 임노복, 임노성등 수십인을 규집하고 병량 수백석도 취합하여 의열에 참여했으며 양공도 전적으로 공을 신임하여 모군에서 출병까지의 모든 계략을 상의하고 량곡, 군기등 모든 물자의 운영을 일체 공에게 위탁을 했으며 공은 진심갈력하여 소기에 어긋남이 없었다. 출군을 하면서 먼저 적에게 선성을 보내고 인군하여 능주에 이르니 이곳의 주왜는 이미 철퇴를 하였었고 전향하여 화순에 당도하니 그곳 왜병도 이미 도피하고 없었다. 다시 전진하여 동복에 도착 일숙을 했는데 다음날 새벽 광주의 둔왜가 대대를 이끌고와 졸습을 하므로 교전을 했으나 세부적으로 아군이 패하여 혹은 사상하고 혹은 피집하여 잔파하니 웅지의 장거는 어이없이 종막을 내리고 말았다. 공은 귀가후 그대로 칩거하여 세사에 절의를 하였으나 잇달은 왜적의 고략으로 중상이 되어 미구에 운명하였으니 향년 74세였다. 오호라 공의 즉세가 100년이되었다. 그간에 국가는 적치로부터 광복이 되어 전일 항왜의 의거에 나섰던 열사들이 차제로 포창되고 공훈이 추서되어 공의 의적도 크게 빛을 보게되었다. 이제 공의 손증들이 공의 유적지에 입비를 하여 영구불후를 도모할량으로 불녕을 찾아와 소각문을 청하니 내 공의 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