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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화 의병장 기적비 장하도다 그 정신 거룩하고 위대하다. 일제의 침략으로 오천년 역사를 이어온 이강토가 풍전등화와 같음을 보면서 방관하고 있을 수가 없어 이글거리는 분노를 안고 구국의 일념으로 항일의병을 일으켜 남도 땅 곳곳을 누비며 왜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겨주었던 장군은 이 고장 왕곡면 송죽리에서 태어나셨다. 기골이 장대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불의를 보면 용서하지 못하는 성품이더니 을사오 조약과 정미조약을 강압적으로 맺고 군대마저 해산시키려하자 분연히 일어나 항일 의병을 조직하여 고막원 헌병 분견대와 샛골파견소를 습격하는 등, 나주,무안, 영암. 남평 일대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려 적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한일합병을 앞둔 1909년 9월, 일제가 이른바 '남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하여 2개 연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공격해 옴으로써 영암군 금정면 덕룡산 전투에서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붙들리는 몸이 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6월 대구법원으로 이송 도중 수갑을 찬 채 두 명의 적을 때려눕히고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적의 군도에 맞아 순국하니, 서른살의 젊은 나이였다. 불타는 애국심과 불굴의 투혼으로 끝까지 싸웠던 장군의 정신은 일백여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지울 수 없는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기에 이 고장 각계 유지들이 정성을 모아 그의 발자취를 수놓은 기적비를 세우나니. 지나가는 길손이여! 잠시 머물러 이 표석을 보시거든 그 정신 가슴에 새겨 오래도록 지우지 말아다오! 서기 2014년 4월 26일 나성화 의병장 기적비 건립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