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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인 다도 남교 교정에 건립하고자 동상추진위원회를 결성 이를 주관하시어 주민들과 함께 동상제막식을 성황리에 마치는 등 육영사업에 공헌하시어 광주광역시장상 및 나주군민의상을 받으셨다. 또한 강릉유씨 대종회 광주, 전남지부장으로서 종친들의 친목과 위선사업에 열성적으로 이바지하였으며 장흥 천방공원모에 증축시에는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강릉유씨 참의공문중의 현성비를 세웠다. 특히 1994년에는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이신 조부님 재희께서 동생에게 혁명사업에 필요한 군자금을 마련해 달라는 100여년 전 편지를 세상에 발표하시어 동학농민혁명의 연구에 큰 공헌을 하시었다. 이 편지의 공개로 동학농민혁명은 짓밟히고 수탈당하는 농민들의 혁명이 아니라 양반들도 참여한 전 국민의 궐기였음을 밝혀주었다. 이때부터 선생은 동학농민 유족회 부회장과 광주, 전남 동학농민 혁명기념사업회 고문으로 동학농민혁명의 명에회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참여하시던 중 드디어 2004년 2월에 동학농민혁명이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여 역사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게 되어 1894년 동학혁명 때 나라와 자주독립에 앞장섰던 조부님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구국의 선구자들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선생도 동학농민혁명의 유족으로 국가에서 인정을 받았다. 계속하여 동학농민혁명의 명예회복과 혁명정신의 계승, 발전에 이바지 하시다가 2007년 9월 30일 향년 84세로 일생을 마치셨다. 선생은 김순덕 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삼남 이녀를 두셨는데 삼남은 창무, 상영, 상권이며 이녀는 훈정, 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