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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터와 묘소는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지만, 모두 멸실, 확인불가였다. 이번 탐방대상지에 조정인 의병장의 고택이라는 곳이 있어서 같이 찾아보았다. 조정인 선생은 나주(羅州)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이어서 대한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더 이상 일제의 만행과 내정간섭을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1907년 12월 6일 호남의병장 김태원(金泰元, 金準)·기삼연(奇參衍)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총기 4백여 정으로 무장시켜 헌병대 및 경찰과 접전을 전개하여 크나큰 전과를 올렸다. 1908년 6월 나주 가산(佳山)에서 의병 심수근(沈守根)과 함께 의병운동에 사용할 탄약을 제조하던 중에 일본 헌병대에 체포당하였다. 그후 광주지방에서 소위 내란죄의 주모자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구복심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고 다시 대심원(大審院)에 상고하였으나 역시 기각되어 1909년 1월 18일 대구 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