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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란시 칠도전승첩하여 녹 일등공신하고 증 병조판서 익 무숙이오. 광해시 휘 찬은 충 영창대군하시여 작가에 폭정을 규탄한 죄로 6년 옥고 끝에 인조반정으로 석방되시고 예빈사 직장이오. 이상 현조는 충의지조이시다. 순조시 휘 진한은 효행으로 증 동몽교관 사정문하였으며 생 4남하니 손자 10명과 종손 10여명으로 지역에서 호족이였다. 고종시 국운이 쇠태하야 왜적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왜구가 침입하여 국모를 시해하고 국권을 유린하니 국민은 울분을 참지 못해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라 광현 택현 병현 윤용 일문은 분연히 뜻을 결하고 왜적과 함평군 학교면 석적리에서 분전혈투 끝에 기유년 8월 10일 구전사하였으니 광현은 55세 택현은 48세 병현은 47세 윤용은 26세였다. 옛말에 수신사라도 명부후라더니 순국하신 4의사의 호국충의신은 천추에 불멸하리라. 충의비건립 취지는 유덕비 사적이 약술하니 견자해득에 다소 보충이 되기를 하라며 여석근술의 순국유덕비문 병현 장손 봉휴 배기 전남대학교 교수 송정현 근찬, 전주 이학용 근서 단기 4324년 신미 2월 일 예술고등학교 교장 하남호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