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page


130page

1910년 한일병합을 전후해 의병 활동으로 부자나 형제가 함께 처형을 당한 경우는 있어도 일가친척 네 명이 한날한시 동일한 장소에서 일본군에 참살 당한 경우는 드물다. 수성 최씨 일가의 슬픈 이야기는 재야사학자 정준영(鄭畯泳·71)씨가 발굴, 주간조선에 처음 공개했다. 정씨는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일가족이 3명까지 참살 당한 기록은 있지만 5명이 함께 몰살한 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주간조선 2083호를 통해 ‘일본판 쉰들러 리스트’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변호사를 소개한 바 있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 복원에 앞장선 인물이다. 101년 전 일제에 참살 당한 최택현은 흥양(興陽·현 전남 고흥군) 현감을 지낸 최희량(崔希亮) 장군의 10대손이다. 최희량 장군은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 것으로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 있는 최희량 장군의 신도비(神道碑·고관의 무덤 앞에 세우는 석비)도 서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 맞서 싸운 최희량 장군의 후손들이 다시 일제에 맞서 의병활동을 벌이다 몰살 당한 것이다.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란 책을 쓴 국립 순천대 사학과 홍영기 교수는 “고경명(임진왜란 의병장)과 고광순(구한말 의병장)처럼 전남에는 과거 왜적에 맞서 싸운 선조의 후손이 다시 일제에 맞서 의병활동에 뛰어든 경우가 많다”며 “최택현 일가도 그런 경우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성 최씨 가문은 전남 나주 지역의 명문가. 예로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몽교관(童蒙敎館)’댁으로 불려왔고, 나주시 다시면에는 ‘정려문(旌閭門)’이란 솟을 양식의 세 칸짜리 기와집이 서 있다. 재야사학자 정준영씨는 “정려문은 예의와 도덕이 출중한 집안에 내리는 것으로 임금의 허락없이는 아무나 못 짓는 가옥”이라고 설명했다. 주간조선 [2112호] 201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