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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음력 8월 10일 전남 함평군 학교면 진례 들판. 최택현(崔澤鉉·48), 최윤룡(崔潤龍·26), 최광현(崔匡鉉·55), 최병현(崔柄鉉·47) 등 네 명이 들판에 세워둔 나무 형틀에 묶였다. 죄목은 의병운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최택현과 최윤룡은 부자간이고, 최광현과 최병현은 최택현의 4촌. 네 사람은 전남 나주의 명문가인 수성(隋城) 최씨의 일가들. ‘탕’소리와 함께 최씨 집안 네 명은 일본군이 쏜 총에 살해됐다. 일주일 뒤인 1909년 음력 8월 17일. 시아버지(최택현)와 남편(최윤룡)의 장례를 치른 나주 임(林)씨는 큰 돌을 가슴에 안고 동네 우물에 몸을 던졌다. 수성 최씨 대종회 최병석(崔炳錫·72) 서울지부회장은 “우물에서 발견됐을 때 치마에 돌이 묶여 있었다고 집안 어른께 전해 들었다”고 했다. 출처: 주간조선 '나주 수성 崔씨 일가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