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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초 황덕환 열사는 임란공신 방어사 창원인 황수동의 11세손의 자로 1855년 2월 15일 영광군 남면 양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전통유가의 정신을 이어받은 열사께서는 소년시절부터 천품이 강직하고 의로 웠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구국의 일념으로 서울에 있는 일본보병군속에 입대 군내부를 정탐한뒤 적도 동경으로 건너가 청산학원에서 수학을 하면서 독립운동의 뜻을 키웠다. 1919년 일본유학생들의 독립선언에 이어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재일유학생에 대한 일제의 탄방이 심하여 중국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이시영과 손을 잡고 항쟁했다. 이어 1922년 3월에는 임시정부의 특명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모집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5년형의 옥고를 치루었다. 그 후 다시 서울에서 민생사라는 이발소를 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