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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兵將後隱商山金公容球忠節碑(의병장 후은 상산김공 용구 충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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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후은 상산김공 용구 충절비명 추아 대한민국은 유사이래로 국난이 있을때마다 하늘이 반드시 난을 평정할 충신열사를 배출하였으니 국운의 위기에서도 국가의 보위를 위하여 구원의 손길이 어김없이 내밀어 주신것이다. 한말의 풍운이 어지럽던 서기 1861년 11월 1일 전남 영광군 대마면 화평리에서 구국의 횃불을 밝힌 인물이 나셨으니 곧 의병장 김공이시다. 장군의 휘는 용구요, 자는 유성이며 호는 후은이니 본관은 성산이다. 고려 보윤공 휘 유를 시조로 조선개국 공신 휘 영중구운보의 16대손이요 충간공 휘 덕생의 15대손이며 임진 영광수성 삽혈동맹 55현인 휘 남수의 10손이고 고는 사인 휘 윤택이니 속세 충효례문가이다. 천성이 충의유절한 장군은 기송사선생 문인으로 성리학과 문무경전에 박통하니 국가동량으로 기대되었다. 오라 간신오국과 일본침략으로 을미국변과 을사늑약이 강제체결되자 자택을 의병본거지로 삼아 기밀연락을 주도케하고 인근 사우를 모아 일심계를 창설하여 척왜결의한 후분연탄일조국이 기망하니 지사보국지시라 제창봉기하야 1908년 8월 수백의병이 영광성중 왜적과 초전한 바 병기불비로 패전하니 이에 성재 기삼연과 장성 수련산에 회동하여 호남창의회맹소라 명명하고 삽혈동맹에 등단 서천한후 기삼연을 대장으로 김용구를 부통령에 추대하여 즉일 출전한바 왜적 수백을 포살하니 사기충천하였다. 장군의 진중일기 신담록과 의병사를 고찰해보면 장성 탑정리전 대승, 고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