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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이인국의병장은 상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 7월 하순경에 함평군 대야면 복룡리에서 동지 박치일, 정인술, 박장봉, 서성학, 양창국 등과 함께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이들은 일찍이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명성을 드날리고 있던 김 준(김태원)의병장 휘하에 입대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밀정 이판안, 김정태, 최치도, 박복남이 그곳 이양삼의 주막에 모여 있는 것을 탐지하였다. 1909년 8월 29일 함평 등지에서 적과 교전한 후 나주 헌병 분견소 구밀파견소의 이들은 평소에 의병활동을 방해해 오던 인물로서 반민족분자로 지목되어 있었다. 이강산은 함께 동행하고 있던 박치일·정인술·박장봉·서성학 외 2인에게 작전을 지시하였다. 이들이 이양삼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양창국과 박병수가 그곳에 와 있었으므로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이에 양창국과 박병수도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렇게 의견이 일치된 8사람이 협력하여 이판안·김정태·최치도를 현장에서 살해하고 박복남을 산중으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그후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적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1910년 6월 6일 사형 순국하였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