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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영재 복원 실기 낙영재는 원래 석계촌 후에 있었으며 후진들의 훈학을 위하여 참봉 김재욱 공을 위시로 온 주민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건립한 서당이며 한학의 기초와 작시 및 구문법을 익히고 나아가서 성현의 도를 탐구하였고 또한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걱정하고 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토론하는 등 애국심의 배양에도 힘썼으니 낙영제는 선비정신과 애국심이 투철한 인재를 육성하는 도장으로 자리잡아갔으며 이 소문이 퍼지자 찾아오는 학동이나 유생이 많아졌다. 기미 3.1 만세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고 그 소식이 전해지자 낙영재의 유생들도 3.1운동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김기택 공을 비롯한 유생 24인이 모의하고 군중동원에 총력을 다하여 1919년 4월 8일 문장에서 거사하니 참여한 인원이 2천을 넘었고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니 일경들도 간담이 서늘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으며 일헌병 및 일경에게 굽히지 않고 싸웠으니 이 운동이 전남지방에서는 가장 빛난 항일운동인 4.8 문장만세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