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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기 임시정부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일제의 수색이 심해지자 임시정부는 항저우로 이동하였으며, 1940년 충칭에 정착할 때까지 약 8년간 항저우.자싱.전장.광저우.류저우.치장 등지를 옮겨 다니며 유랑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임시정부는 군사양성을 위해 중국 군관학교에 한인 청년들을 파견하여 군사 간부로 육성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을 조직하였다. 또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을 임시정부 산하로 편입하였다. 이어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위해 1935년 한국국민당을 결성하고, 1937년에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조직하였으며, 1939년에는 좌우합작을 위한 기본 합의를 하였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활동은 비록 끝없는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조국 광복을 이루려는 노력의 결실들이었으며, 이후 1940년대 중칭에 정착한 후 한국광복군 조직, 좌우합작 성공 등의 결과를 맺기 위한 과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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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화츠(年花池) 임시정부 1940년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한국광복군을 조직하는 등 각종 조국 광복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독립운동 단체의 중심으로서 국내외 모든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다. 1940년 5월 민족주의 세력을 통일하여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10월에는 임시헌법을 개정하고 주석제를 도입하여 강력한 지도체제를 갖추었다. 충칭에 정착한 후 좌익진영 독립운동 세력과의 통일도 실현하여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좌우익 세력의 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1941년 11월 광복 후의 국가 건설 계획을 담은 대한민국건국강령을 제정 공포하여 독립운동 지도이념을 정립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1945년 2월에는 나치 독일에 대해서도 선전포고를 발표하였다. 이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전후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전략이었고, 중국, 영국, 미국 등 연합국과의 연계를 맺으며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