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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를 준비하는 한인애국단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이 난관에 봉착하고 임시정부의 주도적인 지위가 악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1931년 국무회의에서 임시정부 특무대로 한인애국단 창설을 의결하고, 전권을 김구에게 위임하였다. 김구는 미주지역 동포들이 보내온 독립운동 자금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동시에 일본요인 암살과 식민기관 폭파를 도모하였다. 한인애국단의 활동은 우리민족에게 독립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를 심어주었고, 한국인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중국국민당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내게 되었다. 이는 임시정부를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다시 부각시켰고, 다른 독립운동단체에 영향을 주어 민족의 역량을 결집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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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거현장 윤봉길 의거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거행된 일왕의 생일 축하식인 천장절 겸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 고관들을 처단한 사건이다. 이 거사로 상하이 파견군 시리카와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켰으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공사 시게마쓰, 총영사 무라이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5월 25일 상하이 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1932년 12월 8일 가나자와 형무소로 옮겨져 12월 19일에 순국하였다. 중국의 장제스으로부터 중국군 백만 대군이 못한 일을 하였다는 찬사를 받은 윤봉길 의거는 침체에 빠진 임시정부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었으며, 한국인의 독립 열망을 전 세계에 표현한 일대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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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거현장 이봉창 의거는 1932년 1월 8일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처단하고자 수류탄을 투척한 의거이다. 그러나 폭탄은 마차 기수와 근위병에게 부상만을 입히고 일왕을 처단하지는 못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이봉창은 일제의 신문에 불응한 가운데 예심도 없이 진행된 비공개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 의거로 임시정부는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으며, 중국정부와의 협력 관게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제는 의거를 보도한 신문사를 습격하였으며, 결국 일본 승려 살해사건을 빌미로 상하이를 침공하는 상하이사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