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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항의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일본패와 매일 같이 몽둥이 싸움이 벌어져 장성 기마대까지 출동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주모자인 전상술 외에 김영배, 박균홍, 최대연, 김병기 등이 일본경찰 고등계 형사대에 붙잡혀 모진고문과 국가 소요죄로 2년간이나 감옥살이를 치루었다. 김병태 일본순사 부장 구타사건 : 1944년 본면 달성리 김병태는 평소 우리 한국민을 멸시한 일본경찰에 분개하여 오던중 징병으로 붙들려 가면서 일본순사부장을 힘껏 두들겨주고 적으나마 한을 풀었다. 독립탑 건립 :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기쁨을 이 고장에서도 영원히 기념키 위해 1947년 8월 15일 대한독립촉성 국민회 북이 분회장인 김을수, 부회장인 신형식, 김용지와 감찰부장인 전상술이 주동이 되어 이곳에 독립탑을 세웠는데 준공식에는 정읍, 고창, 담양 등 각지에서 모였다. 6·25 사변당시 탑이 파괴되어 대한청년단장 전상술씨가 재건하였으나 이번에 이설복원하게 되었다. 모현리 삼일 사건 : 3·1독립만세 운동의 높은 뜻을 오래 기리기위해 모현리 류상문, 류두환, 최동호외 여러분이 서둘러 정부보조와 신태호씨를 비롯 유족, 유지들의 지원으로 1990년 모현리에 삼일사를 세워 당시 주동이 된 열세분의 제사를 매년 삼월삼진달 모시고 추모하고 있다. 서기 1992년 2월 일 김병효 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