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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동장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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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동장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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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위원장에 이어 임시의장으로서 자주독립을 위하여 운신의 힘을 기울여 영일이 없었다. 1948년 5월 향리인 고창에서 초대 국회의원에 당선 제헌국회에서의 법제사법위원장과 헌법기초위원으로 민주헌법제정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동족상잔의 참화가 발발되어 선생이 이제껏 그를 위하여 피나게 싸우고 몸바쳐 사랑한 겨레의 손에 납북되어 안위의 소식조차 끊기니 원통함이 이에서 더하랴. 원숙하여 한창 활동할 62세때이다. 해박한 식견과 온축된 경륜을 한껏 펴볼 겨를이 없었으니 이 소식전해지매 세인이 사표를 잃고 촉망함이 끊긴지라. 통석함이 그지없더라. 근촌은 선생의 아호요 본관은 수원이니 거유 휴암 선생의 10대손이요. 고도진 공과 비 장택 고씨의 장자로 1889년 1월 28일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생근리에서 태어났다. 배는 김해인 김벽송 여사와 순흥인 안준 여사이니 자는 완과 순이요. 녀는 칠순 이순 경순 봉례 성례 순례 성순 말순이 있다. 선생은 이제 이승에 계시지 않으리니 눌한듯 불을 토하는 쟁쟁한 옥음과 관하면서 중을 압하는 위위한 풍도에 다시 접할 길 없도다. 저희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고례에 따라 여기 초혼의 장을 모시고 선생의 편영을 삼가 적노니 평생을 겨레에 공헌함을 숭앙함이요. 후진으로 하여금 선생의 유덕을 흠모하고 본받게 하여 영세에 민족정기 진작의 원천을 삼고저 함이다. 서기 1986년 6월 일 근촌 선생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