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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촌 백관수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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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촌 백관수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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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천리 마실길 동학농민군 진격로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지 이 곳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내는 1894년 (갑오년) 3월 20일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이땅의 민중이 떨쳐 일어나 민족과 역사의 주인됨을 세계 만방에 선포한 우리 근대사의 자랑스런 혁명을 일으킨 곳이다. 당시 가장 억압받고 착취당하던 농민들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한울님이다"라고 하는 인본주의 사상의 동학교와 결합되면서 인간 본래의 인격과 존엄성을 지키고,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제도 관료사회도 청산하여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당시 동학교 2세교주 최시형 (북접)은 충청도 보은에 좌정하고 있었고 무장현 괴피의 손화중 (남접) 대접주는 이른바 선운사 도솔암 미륵비기 탈취사건 이후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편 사발통문 거사계획등 고부농민봉기를 이끌었던 전봉준은 두어 달 동안의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세력이 약화되었을 때인 계사년 12월 10일 공음년 구수내 송문수집에서의 회동에 이어 갑오년 2월 19일 공음면 신촌의 김성칠 접주집에서 전봉준 김개남 김덕명 서인주 임천서 송문수 정백현 강경중 김영달 고영숙 최재형 등 13명의 지도자들이 모였을 때, 시기상조(時機尙早)를 말하며 미루어 오던 손화중을 설득, 동참을 이끌어 냄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동학농민혁명을 도모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구적산 아홉골에서 내려오는 물에 의해 연병장 같은 모래사장이 크게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의 훈련과 집합에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전봉준을 도솔대장(都率大將)으로 한 농민군은 포고문(布告文)과 격문(檄文)등을 띄우고 보국안민창의(輔國安民倡義)의 큰 깃발을 높이 들고 동학농민혁명의 대장정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