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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계획을 말씀드린 뒤 고창 신림면 가평리의 방호정사, 현 도동서원에서 수 개월간 의병을 준비하며 "우리 의병군사의 올바름을 빋고 적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팔도사민창의 포고문을 작성해 각지에 배포해 의병과 무기, 군자금을 모집하고 전투에 참여했다. 면암 의병이 태인 무성서원에서 거의한 뒤 정읍, 고창, 순창, 곡성, 남원으로 잇따라 진출하며 순세가 최고 800여명에 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분들의 헌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을사의병에서 끝내 통한의 분루를 삼키긴 했으나 네 분은 굴하지 않고 1912년부터 1914년까지 활동한 유림의 비밀결사조직인 독립의군부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또 1919년 3월 1일에는 고종의 인산일을 맞아 대한문앞에서 일제를 규탄하고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상소를 올렸다. 고예진선생 등은 1919년 3월 6일 민족의 독립을 강하게 요구하는 선언장서를 작성해 종로 4거리에서 만세를 부르며 크게 낭독하고 조선총독에게 전달하다가 투옥됐다. 선언장서 투쟁은 동아일보 1950년 3월 1일자에 "삼일운동 비사 33인 뒤이은 12지사, 무력행사에도 의연, 종로4거리에서 독립만세 고창. 총독과 직접 단판"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다됐다. 정부는 네분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을 기려 고석진,고예진,고제만 선생께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고순진선생께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고석진, 고예진 선생은 면암 선생과 함께 도동서원에 배향돼 있으며 해마다 5월 5일에 추모식이 거행되고 있다. 이에 충의의 고장인 고창에서는 민관이 합동으로 기념비를 건립하여 네분 선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이를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 한다. 단기4347년 서기 2014년 3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