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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 독립운동가 추모의 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는 가히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악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권을 회복해 민족을 살리고자 했던 우국지사들은 일제의 노예로 사는 것을 과감히 거부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전국의 명망있는 유리데표 137분이 목숨을 걸고 참여해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설파한 1919년 3월의 파리장서 독립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137분의 애국지사들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무단 식민통치를 강하게 규탄하고 민족독립을 강조한 독립청원서, 즉 파리장서를 비밀리에 작성하여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위해 열린 파리만국평화회의의 대표단을 비롯해 국내외에 대거 배포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통일한국을 건설하고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저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국제 외교전을 벌여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시사점이 매우 크다. 현재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 장충단공원을 비롯 전국 여러 곳에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하지만 유림대표 137분 중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네 분이 참여하신 고창세는 아직껏 기념비가 없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특히 네 선생은 1905년 말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주권을 침탈한 일제에 항거해 스승인 면안 최익현 선생을 모시고 1906년 6월 의병 투쟁을 벌이시다가 투옥됐다. 네 분은 당시 충남 청양에 기거하시던 면암 선생께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