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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의로운 영혼이 잠들어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단절되자 망국의 한을 안은 피끓는 우리민족은 국내외 곳곳에서 총칼로 맨주먹으로 항일구국투쟁을 전개했으니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의거는 1919년 기미만세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었다. 당시 고창고보는 교사 학생 함께 애국혼으로 무장된 전국유수의 명문이었다. 광주학생사건에 앞서 그해 33월에 일인교사 굴강추출맹휴가 있었고 5월 독서회의 이름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사건에 이어 6월 애국지사 이종오선생 유임맹휴가 있던터라 대일감정이 극에 달할때에 광주에서 일인학생의 행패를 규탄하여 시위가 격화되자 고창고보에서는 즉각 동조맹휴에 들어갔고 1930년 1월 23일 고창장날을 기하여 대규모 만세운동을 획책하던중 20일 전국적인 휴교령이 내리면서 격문 8000여매와 태극기 수백폭이 압수되고 많은 학생이 검속되어 5인은 전주형무소에 수감되니 전후 학생운동을 주도한 이는 유금동의사였다.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