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page


154page

?렬 연일 정운복에게 출가하였다. 오호라. 공은 거가에 효우하여 일향이 긍식하고 국난에 거의하여 국가가 포상하고 학덕이 고매하매 사림이 존사하니 그 학문 그 지절후학의 우러르는 바다. 이에 유림 문인 후손 뜻을 모아 추모비를 세우면서 나에게 그 갈문을 청하므로써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전력이 있어서라 위손 윤상의 효심에 감심되고 한국종교협의회 성균관대표 이사 김석원의 청이 있어 흔연히 붓을 들어 위에 공의 사행을 약술하고 명을 한다. ..중략 '' 단기 4319년 병인 4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