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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윤(玄相允, 1893-?)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어려서 한학을 수학했으며, 1909년 정주 육영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대성학교에 입학했다. 국권상실 후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쇄당하자 보성학교로 전학해 1912년에 졸업했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해 중앙고보 교사로 부임하였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중앙고보 교장에 취임했고, 1922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결성에 참여해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해방 직후 경성대학 예과부장을 지냈고, 1946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냈다. 1947년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여 근무하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