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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뒤쪽 인촌 김성수 선생의 양아버지이신 원파 김기중 선생의 어록비와 동상이 있었다. 김기중(金祺中, 1859 ~ 1933)선생은 1904년 용담군수를 거쳐 평택 군수·전라남도 동복 군수를 지냈다. 1906년 통정대부에 올랐으나 나라가 기울어짐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사직했다. 가난한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대주었고, 교육 계몽을 역설하는 순회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최종 관직은 가선대부에 이르렀고, 1910년 관작을 사퇴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그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투자하여 육영사업을 시작했다. 1908년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에 영신학교(永新學校)를 설립하고 김성수, 송진우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가 문물과 교육제도를 시찰한 후 1929년 경영난에 빠진 중앙학교를 인수, 계동에 교사를 신축하였다. 양자 김성수가 중앙학회로부터 중앙학교를 인수하려 할 때, 집안에서는 반대하였으나 홀로 김성수의 편을 들어주었다 한다. 가난한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대주는 한편 사회에 기부활동을 하기도 했다. 1923년에는 동생 김경중과 함께 보성전문학교를 인계받아 양자 성수로 하여금 운영케 했다. 1933년에 84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거국적으로 사회장이 추진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