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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립의 대본이 첫째 교육에 있음을 깨닫고 일제의 억압과 싸워가며 이 사업을 완수한 이는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다. 선생의 사업이 허다하지만 특히 교육은 그가 지상 사명으로 삼사 물심을 기울여 일을 여기에 바쳤던 것이다. 선생은 본시 고창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단기 4248년 중앙학교를 맡아 일익확장 다시 그 경영을 반석 위에 놓고자 4262년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창설하였다. 그 후 2년에 걸친 구미 유람에서 또 깊이 느낀 바 있어 4265년 보성전문학교를 이어받아 전기 재단 경영 밑에 두고 안암동 넓은 지역을 택하여 괄목할 시설을 이룩하니 영재육성과 아울러 민족문화배양의 일대 요람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갈망의 해방을 맞이하자 익 4279년 드디어 보성전문학교를 개편하여 고려대학교로 승격시키고 한층 더 내용을 확충하니 그의 포부는 실로 원대하였다. 아! 선생은 4288년 아깝게도 65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애국애족의 발로에서 교육사업에 진췌한 그 숭고한 정신, 치밀한 경영, 거룩한 공헌은 길이 후세의 사표가 되고 남음이 있으리라. 고대 교유가 중심이 되어 본교 관계유지들과 함께 선생의 높은 덕행을 추모 기념하고자 모교 교정에 이 동상을 모신 것이다. 단기 4292년 5월 5일 건립. 고려대학교 교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