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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의 백범학원과 김구주택 백범 김구 선생은 1945년 11월 23일, 27년 만에 김포 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본 조국의 첫인상 중에서 "책보를 메고 길에 줄지어 돌아가는 학생의 활발 명랑한 기상을 보 우리 민족 장래가 유망시 되었다"며 특별한 감격의 기쁨을 토로하신 바 있다. 백범은 정치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1948년 12월 31일 서울 시내 각처를 순례하며 집 없이 굶주림에 떨고 있는 빈궁한 동포들에게 총 90만 원을 희사하였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 희사금은 어머니 곽낙원 여사 유해 환국 봉안식에 들어온 부의금과 아들 김신의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라고 한다. 백범은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중간에 서서 나를 사랑해 주는 여러 친구의 심부름을 한 것뿐"이라면서 적은 돈으로 분배 방침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너무 많았는데, 결국 전재민(戰災民) 아동의 교육 보조비로 증여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금호동에 전달된 돈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던 무산(아동을 위한 백범학원을 건설하는 기금이 되었고, 당시 신문은 1949년 1월 27일 백범학원 개원으로 “많은 까막눈 장님이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백범학원이 세워진 당시의 금호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의 적산(敵産)으로 대부분 전재민(戰災民)주택이 되었다. 금호동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는 백범 김구 선생이 추진하여 이루어진 일이라 당시 전재민주택을 김구주택이라 불렀다고 한다. 성동구는 백범학원과 김구주택의 유래를 발굴 조사하여 백범학원이 있었던 현재의 위치(금호동4가 548-1)를 밝혀 내고, 백범 김구 선생과 금호동의 인연을 기리고자 당시 김구주택의 중심 터에 김구 선생의 교육철학과 백범학원을 기념하는 비를 세운다. -2013년 8월 29일 백범 선생 탄생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