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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에 이 집의 주인이었던 구익균 선생은 105세로 최고령 독립유공자로 계시다가 올해 2013년 4월에 운명하셨지만 국가보훈처가 ‘해방 이후의 행적’을 문제 삼아 뒤늦게 묘지 안장이 거부되어 발인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취소되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구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한 국내 최고령 독립운동가다. 1928년 신의주 고보에 재학하던 중 잡지 ‘신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이듬해 3월 신의주 학생 의거를 주도했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선생은 1933년 광둥의 중산대에 근무하면서 한국독립당에 가입했다. 한국 유학생 지도책으로 활동하던 중 1935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했었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