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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학문 아름다운 예술을 남긴 이들은 많으나 온 민족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분은 과연 몇이나 되리오. 나라를 잃기도 하고 나라가 갈라지기도 한 어려운 역사 속에서도 일석 이희승 선생은 오직 지조의 외길만을 걸으셨으니 가히 굵은 대나무는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고 서리를 이긴 그 국화는 학문과 예술의 마당을 채우는 향기가 되셨도다. 밀려오는 오래 문화와 혼탁한 사회 속에서도 지금 우리의 말과 글의 심지가 꺾이지 않은 것은 그리고 민족 문화의 샘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까닭은 오로지 선생 같은 스승이 우리 앞에 계셨기 때문이다. 선생이 겪으신 조선어학회사건의 고초를 모르고 누가 우리말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남기신 수많은 시나 글을 읽지 아니하고 누가 우리 말의 유현한 맛 진솔한 정감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1896년 광주 고을에서 태어나 1989년 서울에서 삶을 마치실 때까지 이화여전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동아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선생이 보여 주신 고결한 성품과 곧은 행적을 어찌 다 이 작은 돌조각에 새길 수 있으리오. 다만 선생의 덕을 기리고 공을 흠모하는 정성을 모아 이 곳에 작은 비를 세우니 뒤에 오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옷깃을 여미고 남기고 가신 그 발자국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1994년 10월 31일 이어령 글 짓고 김충렬 앞면 글씨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