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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 대한민국만세라 혈서를 써 들고 계속 대항하다가 왜병들에 포박되여 청주법원으로 압송 주모자인 열사는 민중봉기 소요죄로 징역 2년의 형을 받고 공주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군락청소검열을 받는데 헌병들의 행패가 심하자 분개한 열사는 왜놈 헌병과 대판 싸우다 연행되어 헌병대에 3주간이나 구금되였다가 풀려나왔으나 항일사상에 불타는 열사는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남겨두고 경북 금릉군 부항면 읍천리 금광으로 가서 광부로 가장 그곳 광산에서 백여명의 동지들을 규합 동포를 사랑하고 나라를 다시 찾는 길을 가르치며 다시 거사할 것을 의논하고 광산에서 쓰는 염초로 사제폭탄을 제조하여 시험하던 중에 이를 눈치챈 왜놈 헌병들의 기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지들과 삼도봉에서 왜병과 대치하였으나 중과부적이라 동지들은 적탄에 쓰러지고 열사는 자폭하니 원통하구나. 그렇게도 애태우던 조국광복의 염원을 가슴에 안은 채 장렬히 산화하니 그의 나이 24세였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 같이 바치신 열사의 거룩하고 숭고한 애국충정을 높이 기리기 위하여 1986년 대통령령 제66479호로 포상하다. 대한민국 71년 기사 8월 일 유가족 일동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