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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桂(하계)마을 자랑비 관성땅을 주름잡던 옛터전이 읍내면(1910년)에는 군내면으로 바뀜) 저전리와 향청리다. 1910년 저전은 문전 죽향으로 향청은 항계 하계로 분리되다. 이때 부곡리(샘실)와 대사동리가 하계리에 합하여졌다. 마을앞을 흐르는 맑은 물 냇가의 세그루의 느티나무 맑은물에 뛰노는 고기들 동민의 마음의 보금자리가 바로 여기다. 두 쪼각의 청석의 다리 이것이 영구히 이름 저하는 청석교다. 우리마을이 낳고 길러낸 4명사를 자랑한다. 하나는 애국독립지사 청풍인 김규흥씨다(1871-1936). 구국독립의 길은 교육에 있음을 간파 전재산을 투입하여 옥천읍에 창명학교를 설립하고 일제 강압으로 상해로 망명 손중산 왕정위와 신해혁명에 가담하다. 동3성 교포를 구출코자 내몽고 지방을 개척하고 양병의 목겆으로 한중합작 흥국은행을 설립 평생 광복운동에 헌신하시다. 다음은 한국근대 시문학의 혁신적 고봉을 이른 시인 정지용씨(1903-1950 납북 조선조 정송강 시인의 후인)다. 왜정으로 민족혼을 수탈당하는 슬픔을 예리한 붓끝으로 토로하여 근대시의 참신한 시상을 펴냈다. 전국시인들이 지용회를 조직하여 숭앙하고 있다. 다음은 적선가 김희중씨(1908-1963)가 있다. 4대를 이은 효가문으로 의용소방대장 번영회장을 역임하시고 서당을 세워 청소년 교육에 힘쓰시다. 선생께서는 을묘년한재 백미백석을 희사하시고 6.15전란ㄸ깨 남하길에서 비상용 금지환을 팔아 피난에 고생하는 향민을 구호하식다. 다음은 법조인 이은식씨(1908-1976)가 있다. 각고면려 법학을 닦으시고 새로 세운 조국의 법질서를 세운 분이다. 청주지방법원 판사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리 하계마을은 빛나는 선배들의 가호아래 충과 효 그리고 애로 굳게 뭉쳐 무궁하리라. 1992년 9월 주민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