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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름 유래 : 백운리는 원래 청산면 현내면 백운동리에 속하였던 마을로 마을의 이름은 조선 세조 때인 1460년경 청산현감이 동헌 위쪽에다 정자를 짓고 당대의 문장가이며, 영중추부사를 지낸 김수은에게 정자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던바 "청산에는 백운이 없는데가 없고 백운이 있는 데는 청산이 없는 데가 없다. 그리고 옛 사람의 시에 청산은 백운 밖에 푸르며 백운은 청산 속에 희고, 희다라 하였으니 백운정(白雲亭)이라 함이 좋겠다."라고 하여 백운정이라 이름 지었고 마을이름도 백운리라 하였다. 백운리는 고백이, 평짓마, 돌안마, 한뎃마당이 있고 자연마을로 중골이 있다. 중골은 교평리와 백운리 중간에 있어 중골이라 부른다. 돌안마는 지전리와 백운리에 경계주변을 말한다. 한뎃마당은 마을 중앙에 위치하여 널다란 광장을 이루고 있어 한뎃마당이라 부른다. 고백이는 고씨, 박씨, 이씨가 마을을 형성했기에 고박이로 했다가 변천하여 고백이가 되었다. 마을역사 : - 1739년 여지도서에 보면 현내면 백운동리라 하여 83호가 살았다. - 1891년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103호가 살았다. -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현내면이 청산면으로 되면서 옥천군에 소속하게 되었다. - 1970년 197호 1038명 / 1980년 197호 808명 - 1990년 180호 568명 / 2018년 165호 311명 마을인물 : 백운리 출신의 독립운동가 8명 / 조동호, 박재호, 박동희, 안병하, 김홍, 고한주, 신업이, 권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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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석 선생은 김천에서 출생하셨기 때문에 이 안내판에는 빠져있다.